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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

너와 나는 하나다.

유장수 칼럼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좀 더 절실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각기 한 그루의 나무처럼 존재한다는 거다. 너는 밤나무, 나는 잣나무, 저 사람은 참나무처럼 말이다.

 

그런데 마음을 닦고 정진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 내가 고집해왔던 나만의 성벽은 무너지고,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음의 눈이 떠지고, 참다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여기서 선·후는 분명하지 않다. 마음의 눈이 먼저 뜨인 것인지, 아니면 깨달음이 먼저인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새로운 눈이 뜨이고 보니, 깨닫게 된 것인지, 깨닫고 보니 눈이 뜨이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 두 가지 사안이 동시에 일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은 따질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자기 참모습을 찾은 깨달음이라는 변화를 얻었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 한 그루의 밤나무로 존재하면서 독립된 위치에서 개별적 삶을 사는 개체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그게 아닌 거다.

  

나는 독립된 개체로서 주변과 간격을 두고 홀로 서있는 한 그루 외로운 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숲에 포함되어 존재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숲에는 밤나무도 있고, 잣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다는 거다. 이것들은 서로 따로따로가 아니고, 숲을 이루는 필수 구성 요소이며, 숲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들은 그저 숲에 포함된 하나인 거다. 커다란 테두리 안에 너도 있고, 나도 있는 거다.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 상호 관계에서 나는 하나의 개체이지만, 가족의 범주 속에서 우리를 생각하면, 구성원인 서로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 공동체인 거다. 가족으로 묶인 하나인 것이다.

 

이처럼,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발현되어 상호 관계 속에서 끈끈하게 작용된다면, 이 세상 사람살이는 지금보다 훨씬 안락하고 평온해질 거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배려와 자비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아낄 수 있어,  우리 삶을 더욱 훈훈하고, 윤택하게 할 거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다.”라는 개념은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자비심과도 크게 관계한다고 할 것이다.

 

 이에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그의 자비하심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많은 이에 의해 지금도 구전되고 있음은 상기할 만 하다.

  

만년에 부처님은 어느 날 쭌다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쭌다는 망고나무 숲에 사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쭌다는 석가모니를 집에 모시고, 마지막 공양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부처님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했다. 그 동안 아껴두었던 돼지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저녁 식사로 대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인도의 날씨는 우기로 접어들기 시작하여 덥고 습했으며, 또한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다. 여러 이유로 해서 이 돼지고기는 상한 것이었는데 쭌다는 그것을 몰랐다.

 

상한 돼지고기 음식을 대접받은 부처님은 그만 식중독에 걸리게 되셨다. 당시 나이 80의 고령에 밤새 설사를 하고, 혈변도 보게 되었다. 급기야 완전 탈진된 상태에서 곧 열반에 이르게 될 것임을 예감하게 되었다. 이 때, 이것을 지켜보던 제자 아난다가 그 상황을 쭌다에게 알리자고 말했다.

 

이 때, 부처님은 기진맥진한 상황에서도 아난다를 강력하게 제지하며, 그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셨다. “쭌다가 준 음식을 먹고 내가 열반에 들었다고 하면, 쭌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느냐. 그러니 쭌다에게 말을 하되, 부처님은 당신이 해준 공양을 마지막으로 먹고 열반에 드셨으니, 당신에게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라고 전하도록 하셨다. 이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상대방의 마음 아플 것을 먼저 염려하신 것이었다. 결국 부처님은 그의 집에서 열반하셨다.

 

이게 곧 자비심이라는 거다.

 

쭌다가 마음 아파하는 것은 곧 부처님 자신의 마음이 아픈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즉 부처님 마음이 쭌다의 마음이요, 부처님의 마음과 쭌다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때에도 자비심을 몸소 실행하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너와 나는 하나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자비의 참모습을 본다.

 

자비심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그렇게 여겨서 베푸는 혜택”이라고 한다. “베푸는 혜택”이란 너와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상대방의 어려움을 나의 것처럼 헤아려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자비인 것이다. 자비심은 너와 내가 하나일 때 자연스레 표출될 수 있다.

   

이렇듯 너와 내가 하나인 것은 이기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마음가짐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 자비를 베푼다는 것도 먼저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려는 사람끼리의 따뜻한 관심의 표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제 나에게 작은 능력이라도 있을 때,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생활을 해보자. 그래서 이웃끼리 삶의 현장에서 자비의 정신이 넘쳐나게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살기 좋아지겠는가?

  

자비의 끝에는 항상 따스한 인정만이 있을 것이다.